SOLIS미래로 가는 길
KO
제 12 장

실현과 이행

마라의 어머니 로자는 강가의 도시가 등대가 되었을 때 스물아홉 살이었다. 추첨으로 뽑힌 이들이 함께한 첫 의회, 공유재가 된 첫 정수장, 아무도 추위에 떨지 않은 첫 겨울이었다. 로자는 그 이전의 해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협동조합이 아직 기업들과 나란히 서 있었고, 도시가 그들의 허락 없이 사는 법을 배우던 때였다. 그는 떠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서 땅을 사들이려던 변호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결국 아무도 팔지 않게 될 때까지였다. “우리는 그들을 이긴 게 아니야.” 그는 말했다. “그들을 쓸모없게 만든 거지.”

SOLIS 같은 질서는 스위치 하나로 들여올 수 없다. 사회를 하룻밤 사이에 새로 프로그래밍할 수도, 모든 두려움과 막힘을 논쟁으로 지워 버릴 수도 없으며, 결정적으로 이런 질서를 그 자신의 토대를 배신하지 않고 강제력으로 세울 수도 없다. 존엄과 성숙에 기대는 질서는 쿠데타로 설치될 수 없다. 그것은 설득과 성공한 본보기로 얻어 내야 한다. 그래서 SOLIS는 시간과 인내와 용기, 그리고 실수에서 배우는 문화를 요구하는 길고 의식적인 변화다. 이 장은 그 길, 그 길을 가는 사람들, 그들이 마주칠 저항, 옛 재산의 운명, 그리고 길이 아직 옳은지 알아볼 수 있는 잣대를 그린다.

기존의 것에서 SOLIS로 가는 길

길은 서로 맞물리는 세 국면을 지난다. 처음에는 의식의 변화가 있다. 구조가 바뀌기 전에 머리와 가슴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만이 아니라 가능성도 드러내는 정직한 현황 점검, 그리고 미디어와 예술과 학문과 일상에서 우리가 정말로 이대로 계속 가고 싶은지 감히 묻는 용감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이 질서의 원칙을 이야기하는 영화, 시민과 전문가와 활동가를 한자리에 모으는 대화 모임, 아이들이 사실을 외우는 대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교재, 그렇게 시작된다.

그다음에는 등대, 곧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장소와 사업을 세운다. 순환 경제로 전환하는 도시, 이 원칙에 따라 일하는 사업체, 새로운 길을 시험하는 학교와 연구 그물이다. 한 작은 도시가 공급을 재생 가능한 원천으로 바꾸고, 추첨으로 뽑힌 시민이 함께하는 의회를 들이고, 따라 하는 이들을 찾는 본보기가 된다. 이런 사례는 영감을 주고, 변화가 이론만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추진력을 만든다.

충분한 사람들이 설득되고 충분한 사례가 버텨 줄 때에야 체계의 변화가 시작된다. 새로운 법의 틀, 새로운 경제적 유인, 새로운 제도다. 이것 역시 하룻밤 사이가 아니라 단계적으로, 뒷걸음질과 함께, 관찰과 교정을 곁들이며 일어난다. 하나의 원칙이 헌법에 적혀 있어도, 행정과 경제와 사회가 그것을 몸에 익히기까지는 몇 해가 걸린다. 그래서 모든 걸음에는 동반과 관찰과 되먹임이 따른다. 그러므로 SOLIS로의 이행은 여러 세대에 걸친 사업이며, 어쩌면 인류가 지금껏 떠맡은 가장 큰 사업이다.

정직한 진단

여기서 두 가지를 분명히 말해야 한다. 첫째, 이 이행에는 보장이 없으며, 그것은 관성만이 아니라 진짜 저항에 부딪힌다. 둘째, 더 무거운 것으로, SOLIS는 권력과 번영을 새로 나눈다. 기존 질서 아래에서 둘 다를 집중해 쥐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지키려고 세운 제도들과 함께, 논거로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걸린 것은 이해가 아니라 이익이기 때문이다. 힘 있는 자들이 설득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구상은 순진하며, SOLIS는 그런 가정을 하지 않는다. 강제는 포기하지만 현실감각은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이 저항을 어떻게 다룰지는 행위자와 저항을 다루는 대목의 주제다.

전환의 단계

SOLIS로의 전환은 갑작스러운 격변이 아니라, 단계들이 서로를 딛고 쌓이며 서로를 키우는 이어달리기다. 이때 순서는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내적 논리를 따른다. 처음에는 교육이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윤리적으로 성찰하고, 창의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이 없으면 나중의 모든 개혁이 허공을 치기 때문이다. 이 교육은 대학에서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른 유년기에 시작되며, 사람들이 애초에 변화를 빚어낼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그 뒤를 가장 강력한 지렛대인 경제가 잇는다. 유인은 단기적 이익에서 오래 가고 사회적으로 생태적으로 의미 있는 경제 활동으로 옮겨 가며, 참여, 윤리적 목표, 사회와 지구에 대한 책임이라는 달라진 사업체 문화가 순수한 이윤의 논리를 대신한다. 경제가 바뀌면 권력의 질서도 뒤따라야 한다. 정치적, 제도적 구조가 변화를 떠받치도록 투명성을 더하고, 윤리적 감독을 더하고, 참여를 더하며, 차츰 이 책이 그리는 고리의 기관들이 모습을 갖춘다. 그와 나란히 부드러운 요소, 곧 가치와 이야기와 성공과 행복과 의미에 대한 이해에 힘을 쏟는다. SOLIS에서 성공한 사람은 가장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오래 남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끝에 가서 현지의 한 사업은 서로에게서 배우고, 차이를 존중하며, 공동의 원칙을 나누는 세계적 과정이 된다.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단계와 우선순위와 책임을 정하는 로드맵, 사람들을 그저 영향받는 이들이 아니라 참여자로 만드는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 검증된 것을 퍼뜨리는 분명한 길을 갖춘 시범 사업, 그리고 지식과 수단을 나누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그렇게 전환은 혼란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함께 떠받치는 과정이 된다.

행위자, 역할, 저항

SOLIS로의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고 사람들이 떠받친다. 여기서 세 역할이 중심에 선다. 개척자는 흔히 물살을 거슬러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생각을 시험하는 용감한 첫 사람들이다. 사회적 기업가, 지역 공동체, 교사와 예술가가 처음에는 이론일 뿐인 것을 앞서 살아 보이며 추진력을 만든다. 다리 놓는 이들은 덜 눈에 띄지만 없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시민과 정치, 학문과 경제, 젊은이와 노인처럼 그렇지 않으면 갈라져 있을 것을 한데 모은다. 그들은 세계와 세계 사이를 통역하고,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해법을 찾는 공간을 만든다. 끝으로 파수꾼은 윤리와 법을 지킨다. 윤리 평의회, 옴부즈맨, 부정을 드러내는 이들을 위한 플랫폼은 변화가 눈멀거나 무자비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하고, 약한 이들을 보호하며, SOLIS를 그 자신의 요구에 붙들어 둔다.

저항이라고 다 같은 저항이 아니다

움직임이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지만, 저항은 한 종류가 아니다. 저항의 일부는 정당한 신호다. 사람들이 어디서 두려워하는지, 어디에 진짜 이해충돌이 있는지, 어디서 누군가 간과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의 시범 사업이 임대료가 올라 반대에 부딪히면, 그것은 중단할 이유가 아니라 사회적 균형이 빠져 있다는 표시다. 이런 저항은 귀 기울여 듣고 더 나은 해법으로 옮긴다. 그러나 저항의 다른 일부는 개선을 위한 신호가 아니라, 권력과 번영을 잃는 이들이 특권을 지키려는 것이며, 오해에 기대고 있지 않기에 대화로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 두 종류를 같은 것으로 다루는 것이야말로 큰 구상들이 무너진 순진함이다. SOLIS는 둘을 구분하고 각각을 그 나름으로 대한다. 모두가 설득되지는 않을 것이고, 모두가 함께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귀 기울여 들어지고 존중받을 기회를 얻는다.

허락 대신 나란히 짓기

힘 있는 자들은 자기 권력을 내놓지 않을 것이기에, SOLIS는 그들의 동의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 전략은 기존의 권력 중심을 정복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그냥 더 잘 작동하는 나란한 구조를 짓는 데 있다. 협동조합 사업체, 공유재로 이루어진 공급, 추첨으로 뽑힌 시민이 함께하는 의회, 열린 지식 그물, 회복력 있고 넓게 펼쳐진 공급망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옛 구조를 앞지르고 받아들일 때까지 자라게 하는 데 있다. 그래서 이행은 정복보다는 쓸모없게 만드는 것으로 얻어진다. 새 질서가 사람들을 그저 더 잘 섬기는 곳에서 옛 질서는 기댈 곳을 잃는다. 이것은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진짜 길이다. SOLIS가 거부하는 강제 없이 가능하고, 새 질서를 그것이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루어 내는 것 위에 세우기 때문이다.

이름을 붙인 위험

이 길은 실패할 수 있으며, 위험에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가 그 위험에 대한 보호다. 첫째는 장악이다. 새 제도가 바로 그것이 대신해야 할 이해관계에 넘어가는 것이다. 권력의 질서, 추첨, 순환, 해임권이 이에 맞서며, 오래 가는 전유를 기계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둘째는 경제적 질식이다. 적대적인 시장에 박힌 SOLIS의 섬이 굶주리거나 가격 경쟁에 밀리는 것이다. 경계의 통제된 막, 그리고 고립된 개별 시도 대신 회복력 있고 이어진 협력적 구조를 세우는 일이 이에 맞선다. 셋째는 공동화다. SOLIS의 말은 빌려 쓰면서 그 내용은 비워 버리는 것이다. 기본권에 대한 잴 수 있는 관찰, 그리고 공동화를 알아보게 하는 시민의 성숙함이 이에 맞선다. 넷째는 퇴보다. 질서가 시간이 지나며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깊은 시민 교육, 그리고 굳어 버림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 이에 맞선다. 이 위험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회는 그것들에 훨씬 덜 무너진다.

강제는 없지만 방위는 있다

끝으로 모든 것이 걸린 구분이 적용된다. SOLIS는 공격을 포기하고, 강제력으로 자신을 세우는 것을 포기한다. 그것은 전복으로 설치되지 않으며, 원하지 않는 이들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제를 포기한다는 것이 방위를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의로운 무언가를 이룬 사회는 관용의 이름으로 그것이 파괴되거나 방해받거나 탈취되도록 내버려 둘 의무가 없다. 경계는 안전을 다루는 장에서처럼 그어진다. 공격은 금지되고, 방위는 정당하다. SOLIS는 자기가 세운 것을 허물려는 이들에게서 그것을 지키되, 스스로 자기가 거부하는 침략자가 되지 않는다.

옛 재산은 어떻게 되는가

이행의 가장 어려운 물음은 이미 있는 것에 관한 것이다. 백만장자의 집, 기업의 자본, 세 세대째 한 가족의 것인 땅, 한 장인이 은행에서 빌린 대출이다. 이 물음을 피해 가는 구상은 스케치로 남는다. SOLIS는 이 물음에 하나의 원칙과 네 가지 규칙으로 답한다. 원칙은 이렇다. 누군가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빼앗기는 것은 없지만, 한때 권력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권력으로 남는 것도 없다. 이행은 몰수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거둔다. 그리고 그 일은 시민 전체가 질서를 받아들인 곳에서만 일어나며, 결코 밖에서, 결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는다.

첫째 규칙은 개인의 재산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 사는 집, 그가 꾸리는 작업장, 한 가족이 일구는 땅은 그나 그 가족에게 남는다. 소유로서, 또는 땅 자체가 공유재가 되는 곳에서는 지속적인 이용권으로서다. 땅을 더는 팔 수 없게 된 사람도 그 땅에 계속 짓고, 살고,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 둘째 규칙은 금융 재산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공개된 환율로 대비의 문턱까지 가치 포인트로 바뀐다. 그 위에 있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모습을 바꾼다. 생산 기금의 지분이 되어, 옛 소유자에게 평생 가치 포인트로 된 수익을 보장하되, 의결권도, 처분권도, 매각도 없다. 부는 좋은 삶에 대한 권리로 인정되고, 남을 좌우하는 지렛대로서는 해체된다. 셋째 규칙은 기업에 관한 것이다. 기업은 이 질서의 뜻에서의 사업체가 된다. 직원은 참여자가 되고, 경영은 임기가 있는 자리가 되며, 지금까지의 소유자는 자기 자본에 대해 다른 누구와도 같은 규칙에 따라 기금 지분을 받는다. 기계와 건물과 지식은 그것이 필요한 곳, 곧 사업체에 남는다. 넷째 규칙은 빚에 관한 것이다. 질서 안의 사람과 사업체 사이의 빚은 공정한 한도까지 가치 포인트로 갚고, 그것을 넘는 부분은 소멸한다. 이자 없는 질서는 이자 빚을 이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바깥 세계에 대한 빚은 그대로 남으며, 새 질서가 사기꾼으로 시작하지 않도록 막을 통해 힘닿는 대로 갚는다.

이 규칙들은 노후 보장처럼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두 체계가 나란히 돌아가는 긴 기간이 있고, 옛 질서 아래에서 삶을 계획한 이들을 위한 보장된 하한이 있다. 그리고 고리에 매인 사람이 되기보다 부자로 남기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떠날 권리와 함께 적용된다. 떠나는 사람은 들고 갈 수 있는 것을 가져가고, 질서의 것, 곧 땅과 물과 권력은 남겨 둔다. 그렇게 이행은 약탈도, 기존의 것에 대한 항복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옛 재산을 더는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언어로 옮기는 일이다.

소통과 설득

어떤 생각도, 아무리 좋더라도 소통 없이는 살지 못한다.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고, 그것이 자기와 관련 있다고 느끼고, 자기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SOLIS에서 소통은 덧붙이는 것도 광고 기계도 아니라 전환의 심장이다. 소통은 잇고, 설명하고, 영감을 주고, 움직인다.

무엇보다 소통은 무엇이 일어나는지만이 아니라 왜 일어나는지를 설명한다. 오늘날 너무나 자주 개혁은 밀어붙여지고 법은 의결되지만, 사람들은 그 뜻을 알지 못하고, 그것이 불신과 움츠림을 키운다. 그래서 SOLIS는 언제나 무엇을 위해서이며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물음에도 답한다. 한 도시가 재생 에너지로 바꿀 때는 기술적 세부만 알리지 않는다. 이 변화가 왜 필요한지, 길게 보아 무엇을 뜻하는지, 각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한다. 이 소통은 엘리트만이 아니라 모두를 향한다. 여성 노동자, 청소년, 연금 생활자,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를 기업가와 똑같이 향하며, 분명하고 세심한 말로, 전문가의 은어 없이 한다. 고전적인 미디어부터 디지털 매체를 거쳐 현지의 행사와 예술의 수단까지 모든 통로를 쓴다. 그래서 한 도시의 변화는 행정 명령으로만이 아니라 음악과 대화와 함께하는 경험으로 이루어진 축제로도 시작한다.

끝으로 결정적인 것은 소통이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대화로 흐른다는 점이다.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물음을 던지고, 의심을 말하고, 제안을 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 안에서 책임자들은 주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말하며, 실수와 불확실함에 대해서도 열어 놓고, 밀실도 비밀주의도 없이 말한다. 그래서 새 법은 설명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민들이 되묻고, 함께 빚고, 우려를 말하는 열린 기간이 있다. 그렇게 변화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떠받치는 사회가 생겨난다.

국제적 확산과 적응

SOLIS는 세계 위에 덮어씌우는 완성된 틀이 아니다. 모든 사회에는 저마다의 역사와 상징과 자원과 강점과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SOLIS는 스스로를 수출품이 아니라 열리고 적응할 수 있는 모델로 이해한다. 토대와 윤리적 틀을 내놓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현지에서 생겨난다. 다섯 가지 토대는 어디서나 같다. 그것은 협상할 수 없는 등뼈를 이룬다. 다른 것은 방법이다. 어떤 제도를 세우고, 어떤 길을 고르며, 어떤 상징과 의례가 체계를 떠받칠지는 각 사회에 달려 있다. 원주민 공동체에서는 전해 내려온 지식 체계의 보호가 중심에 서고, 탈산업화된 대도시권에서는 사회적, 기술적 발명이, 전쟁의 상처를 입은 지역에서는 고리의 기관들이 생겨나기 전에 먼저 회복력을 쌓는 일이 중심에 선다. 그렇게 모든 사회는 낯선 모델을 덮어쓰는 대신 그 틀을 자기만의 현실로 채운다.

SOLIS가 고립된 섬들로 흩어지지 않도록, 그물이 각자의 길을 잇는다. 그것을 통해 지식이 나누어진다. 어떤 접근이 검증되었는지, 어디서 뒷걸음질이 있었는지,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다. 수단은 가난한 지역도 같은 기회를 얻도록 나누고, 기준은 서로 맞추어, 생태와 인권의 원칙이 그 실현 방식이 다르더라도 어디서나 적용되게 한다. SOLIS로 사는 공동체들의 그물은 모든 대륙에서 교류하고, 공동 사업을 펼치며, 현지의 고유함을 깎아 내지 않으면서 경험을 나눈다. 이런 여러 질서에서 어떻게 그 위에 지배자를 세우지 않는 세계 질서가 생겨나는지는 다음 장에서 펼친다.

길을 무엇으로 잴 수 있는가

이름은 지녔으나 내용을 잃어버린 질서는 앞서 말한 세 번째 위험이며, 이에 맞서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어떤 사업이 아직 SOLIS인지, 아니면 이름만 그런지를 언제든 검토할 수 있는 잣대다. 그것은 단순하며, 누구나 대어 볼 수 있다. 기본 공급이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 있는가, 그리고 기본권 관찰이 삶의 현실에서 그 이행을 재고 있는가.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기관에 추첨이 채우는 부분과 임기의 한도와 해임의 권리가 있는가. 결정과 자금의 흐름과 영향력 행사가 열람할 수 있게 열려 있고, 동시에 개인의 삶은 사생활의 보호 아래 있는가. 누구도 문턱을 넘어 가치 포인트를 쌓을 수 없는가, 포인트의 양이 공개된 숫자인가, 그리고 자본의 배분이 여러 독립된 길로 정해지는가. 생태적 비용이 모든 가격에 들어가는가, 그리고 공동체가 지구에서 돌려주는 것보다 덜 가져가는가. 교육이 질서 자체를 묻도록 가르치는가, 그리고 질서에 대한 비판이 분명히 보호되는가. 남고 싶지 않은 사람은 떠나도 되는가.

이 물음 가운데 하나에라도 아니라고 답해야 하는 곳에서는, 그것이 아무리 SOLIS처럼 들려도 길을 벗어난 것이다. 모두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곳에서는, 이 책과 아무리 다르게 보여도 그것은 SOLIS다. 이 질서를 이루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그것이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권력,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번영, 살 만한 곳으로 남는 지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검토할 자유를 지닌 사람이다.

널리 전해 주세요

SOLIS는 오직 독자에게서 독자에게로만 퍼집니다. 이 장이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면, 이 글을 읽어야 할 한 사람에게 보내 주세요.

◄ 차례로 돌아가기